‘정의’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로는 사회나 공동체를 위한 옳고 바른 도리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정의는 불고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그 시대적 상황에 따라서 다양한 얼굴로 대면하는 하나의 관념일 뿐이다. 실제로 정의라는 것이 인간사회의 약육강식에 의해 좌우되는 단편적인 잣대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이틀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정의란 공리나 복지의 극대화이고,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며,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찰하는 것이다”고 규정했다.

《죄와 벌》은 인간사의 고통스런 삶에 마주한 인간의 심리와 감정이 어지럽게 얽혀 있고 인간과 사회, 인간과 신, 인간과 인간의 갈등 구조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이기심과 추악한 탐욕에 의하여 자행된 수많은 전쟁과 학살의 역사는 참혹한 인간 살육으로 얼룩져 있다.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살인이고, 다수를 죽인 것은 영웅으로 취급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견주어보면 주인공 라스콜니코프의 ‘나폴레옹같이 비범한 사람들은 대의를 위해서 어떠한 불의를 행하여도 된다’는 생각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라스콜니코프의 이런 논리에 따라 사회적 공익을 위하여 추악한 노파를 죽인다.

하지만 그가 던진 정의로움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누구라도 어떤 사람을 가치 있는 인간, 해로운 인간으로 이분법적으로 규정할 수 없으며, 더욱이 이에 따른 살인을 정당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설 도입부는 앞으로 전개될 전체 내용의 맥락을 암시하고 있다.

'7월 초 굉장히 무더울 때, 저녘 무렵에 한 청년이 S골목의 세입자에게 빌려 쓰고 있는 골방에서 거리로 나와 왠지 망설이듯 천천히 K다리 쪽으로 걸어갔다.'

이 모습을 통해서 청년(라스콜니코프)의 불안한 심리와 뭔가 수상한 일을 꾸미려고 하는 행동을 미리 짐작할 수 있다.

결국 라스콜니코프는 계획적으로 전당포 주인인 노파(알료나 이바노브나)를 죽이는 데 성공하지만, 의도치 않게 착한 영혼을 가진 그녀의 여동생(리자베타 이바노브나)마저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가 노파를 살해한 이유는 그동안 전당포와 고리대금업을 통해서 부당하게 이웃 주민을 착취하고 있기 때문에 단죄하고자 한 것이다. 또한 노파는 인간의 머리나 몸에서 피를 빨아먹는 해로운 머릿니와 같기 때문에 죽여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살인으로 인하여 그의 내면은 극심한 소용돌이에 빠져든다.

나중에 포르피리 페트로비치(예심 판사)에 의해 그의 범죄의 윤곽이 서서히 밝혀지고 심적인 고통 속에서 점점 벼랑 끝으로 몰린다. 나중에는 정상 참작을 위해서 자수를 권유받는다. 결국에는 소냐(성스러운 거리의 여인)에 의하여 라스콜니코프는 참회의 길로 들어선다. 그녀와 여동생 두냐는 그가 혹시 자살이라도 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속에서 그의 죽음을 확신할 때쯤 다행히 그가 방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이상한 말투로 “당신의 십자가를 받으러 왔어”라고 말한다. 소냐는 말없이 상자에서 청동과 삼나무로 만들어진 두 개의 십자가를 꺼내어 성호를 긋고, 그의 가슴에 삼나무로 된 십자가를 걸어주었다. 그러자 라스콜니코프 마음속에는 감동이 솟구치고, 심장이 옥죄어 들어오는 것을 느낀다. 이후 센나야 광장에 이르렀을 때 그의 마음속에 갑자기 알 수 없는 느낌이 지배하더니 그의 전 존재, 육체의 마음을 사로잡아버렸다.

마침내 광장 한가운데 무릎을 꿇고 머리가 땅에 닿도록 숙이고 달콤한 쾌감과 행복감을 느끼면서 더러운 땅에 입을 맞추었다. 그 순간 라스콜니코프는 소냐가 이제부터 영원히 그와 함께 있으리라는 것을, 운명이 그를 어디로 이끌든지 세상 끝까지라도 그의 뒤를 따르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의 심장은 터질 것 같았고, 이미 운명적인 장소에 다가가고 있음을 자각하고 경찰서에 가서 자수한다.

인간에게 양심이란 무엇인가? 이익을 따지지 않고 오로지 도덕적 관점에서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똑바로 직시해야만 느낄 수 있는 마음이다. 때문에, 양심은 인간의 가장 밑바닥에서 느껴지는 한 줄기 희망의 빛이다. 인간의 길에서 길을 잃은 라스콜니코프를 통해서 실은 부조리하고 불공평한 사회에서 정의는 한낮 신기류에 불과하다. 오직 신에 대한 믿음과 양심 그리고 사랑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음을 전달하고 있다.

류재준은 광주 출신으로 광주대동고를 졸업한 뒤 전남대학교에서 도시·지역개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키우리라 독서클럽’, ‘광주시청 책사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며, 바쁜 일상 속에서 매주 한권의 서평을 쓸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는 책을 읽었을 때 과연 얼마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지. 또한 그것이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알 수 없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책을 읽는 삶이 책을 읽지 않는 삶보다 훨씬 더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오늘도 인생을 변화시킬 책을 찾아 읽는 것을 멈추지 않는 그는 ‘오늘하루 책읽기 멘토’, ‘런치 북 토크’, ‘독서를 통한 진로탐색’, ‘나를 찾아가는 인문학 책읽기’, ‘삶의 변화를 이끄는 책읽기’, ‘저자와의 대화’ 등의 주제로 대학과 단체등에서 다양한 강연과 활동을 펼치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류재준의 인생독서”, “류재준의 서평독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