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은 또 따른 거짓을 만들어낸다. 과거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자격지심과 부끄러움을 느꼈을 때, 이를 감추고자 거짓과 위선의 변명을 만들어 자기합리화를 하곤 한다. 감추고 싶은 자신의 치부가 드러날 경우 가진 것을 빼앗기고 나락으로 떨어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이웃의 멸시나 시선이 무서워서 회피하고자 하는 마음도 크다. 《라쇼몽》은 단순한 살인사건이 편의적 기억에 좌우되어 진실은 오리무중에 빠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사람들의 나약함과 비굴함 때문에 주체적이고 진실한 삶을 영위하지 못함을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여러 단편을 발표하였는데 그중에 《라쇼몽》과《덤불 속》 두 작품을 하나의 시나리오로 묶어 만든 영화가 바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라쇼몽>이다. 소설 《라쇼몽》은 하인과 노파 사이에 벌어지는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의 추잡함을 엿볼 수 있다.

소설의 제목이자 공간배경이 되는 ‘라쇼몽(羅生門)’은 일본 헤이안시대(794-1185)에 건축된 2층짜리 기와지붕 성문이다. 라쇼몽은 오랜 세월 지진과 기근, 화재로 황폐해지고 버려진 시체로 가득했고, 도적들이 드나드는 소굴이었다.
하인은 비가 오는 라쇼몽 아래에서 굶어 죽을 것인가, 도둑이 될 것인가 갈등한다. 그러다가 하인은 어떤 노파가 죽은 여인의 머리털을 뽑는 모습을 보고 충격에 빠진다. 노파는 죽은 여인이 생전에 부도덕했기 때문에 그녀의 머리털을 뽑는 것에 죄책감은 느끼지 않는다고 항변한다. 하인은 여태까지 굶어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잊어버리고 노파의 옷을 모두 빼앗고 도망을 가버린다. 이성이 무뎌질수록 인간은 윤리의식은 끝없이 추락하여 짐승처럼 행동한다.

소설《덤불 속》은 영화 <라쇼몽>의 중요한 줄거리 부분에 해당된다. 단순한 살인사건이 각자 다른 기억의 파편들로 인해 점점 미궁에 빠진다. 사건의 진실은 하나인데 이에 관계된 인물들은 검비위사의 심문에 자기중심적으로 기억하고 변명을 합리화한다.

산적(다조마루)의 말을 들어보면, 숲속 산길을 지나가고 있는 사무라이 부부를 우연히 보게 된다. 사무라이 옆에 있던 아내의 얼굴을 본 후 그녀를 겁탈할 계획을 세운다. 먼저, 숲속 덤불 가장자리에 귀한 보검을 숨겨놓았다고 사무라이를 거짓으로 유인한 후 그를 결박한다. 그리고 사무라이가 보는 앞에서 그의 아내를 겁탈한다. 추행을 당한 그녀는 이젠 두 남자로부터 모두 버림받을 처지임을 알기에 싸움을 벌여 이기는 남자를 따르겠다고 제안한다. 산적은 사무라이와의 23합에 이르는 치열한 싸움 끝에 사무라이를 죽였다고 말한다.

여자의 참회(마사코)를 들어보면, 산적에게 강제로 수치를 당했는데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남편의 싸늘한 눈빛을 견딜 수가 없어 괴로워하다 기절한다. 얼마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편의 가슴에 칼이 꽂혀 있었다. 혼절하면서 남편의 가슴에 칼을 꽂은 것 같다고 말한다. 혼령의 진술(죽은 사무라이)를 들어보면, 아내 마사코가 다조마루에게 강제로 겁탈당한 후 오히려 그녀가 먼저 산적에게 데려다줄 것을 부탁했다는 것이다. 이에 산적조차 그녀의 비정함에 화를 내면서 죽이려 들었고, 그녀는 겁에 질려 도망쳐버린다. 그 후 산적이 자신의 묶인 몸을 풀어주고 떠나자 홀로 남은 그는 모욕감을 견디지 못하고 단검으로 스스로 자결을 했다고 말한다.

좀처럼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수 없는 이때, 실은 그 현장을 목격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나무꾼이다. 나무꾼의 말은 이들과 너무나 달랐다. 산적과 사무라이 아내와 사무라이의 말들은 모두 거짓이라는 것이다. 여인이 수모를 당한 후 두 사람에 결투를 벌일 것을 요구하자 사무라이는 저런 여인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싶지 않다며 싸우기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여인은 두 남자를 향해 겁쟁이라고 비웃었고, 두 남자는 마지못해 허접한 싸움을 벌였다는 것이다. 우연히 사무라이의 칼이 나무 등걸에 박히자 산적이 운 좋게 사무라이를 죽인 것이라고 말한다. 결말부분에서도 누가 진실을 이야기했는지 밝혀지진 않는다.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기억하는 바람에 진실은 묻히고 거짓만 가득하다.

류재준은 광주 출신으로 광주대동고를 졸업한 뒤 전남대학교에서 도시·지역개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키우리라 독서클럽’, ‘광주시청 책사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며, 바쁜 일상 속에서 매주 한권의 서평을 쓸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는 책을 읽었을 때 과연 얼마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지. 또한 그것이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알 수 없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책을 읽는 삶이 책을 읽지 않는 삶보다 훨씬 더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오늘도 인생을 변화시킬 책을 찾아 읽는 것을 멈추지 않는 그는 ‘오늘하루 책읽기 멘토’, ‘런치 북 토크’, ‘독서를 통한 진로탐색’, ‘나를 찾아가는 인문학 책읽기’, ‘삶의 변화를 이끄는 책읽기’, ‘저자와의 대화’ 등의 주제로 대학과 단체등에서 다양한 강연과 활동을 펼치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류재준의 인생독서”, “류재준의 서평독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