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 19’가 우리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정부의 적절한 초기대응으로 잡히는 듯 싶더니 대구지역 신천지 신자들로부터 확진자가 추가적으로 늘어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로인해 우리나라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이 예견되고, 사람들은 대외활동을 자제하는 등 생활 패턴이 바뀌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나름 애를 쓰고 있지만 정책은 우왕좌왕하고 말의 성찬만 가득하다. 지금은 정책의 방향을 빨리 정하고 강력한 대처 방안을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1947년에 출간된 ≪페스트≫의 ‘페스트’와 2020년 ‘코로나 19’사태는 묘하게 닮았고, 인간의 나약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소설 속 프랑스의 평범한 도시인 오랑은 알제리 해안에 위치한 초목도 없고 넋도 없는 도시다. 어느 날 주인공이자 의사인 베르나르 리유가 살던 집의 복도에 큰 쥐 한 마리가 비틀거리며 불쑥 나타나더니 주둥이에서 피를 토하면서 쓰러진다. 그리고 쥐들의 죽음이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약 8천 마리의 쥐를 수거했다는 뉴스가 발표된다. 시민들의 불안은 절정에 달하고, 아니나 다를까 페스트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기 시작하고 오랑 시는 폐쇄된다.
공포에 질린 시민들은 침울한 도시 안에서 맴돌면서, 오직 지나온 과거만 바라보고 지내는 수밖에 없었다. 페스트는 도시의 경제생활을 파괴하고, 엄청난 실업자를 양산한다. 시민들은 바깥 세계와 차단당하자 점차 극단적으로 행동한다. 페스트가 모든 것을 뒤덮어버리고 사람들은 공포와 고립감과 생존본능만이 넘쳐날 뿐이었다. 설상가상 도시는 몇 달 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아서 희뿌연 먼지로 자욱했다. 오랑시의 좁은 공동묘지는 버려진 관과 시체로 넘쳐났고,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도 저와 다르지 않을 거라는 공포에 떨어야 했다. 더 비참한 것은 이처럼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아침이 되면 다시 재앙 속으로, 일상 속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페스트는 고독하면서도 고독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을 공범자로 삼는다. (…) 그는 눈에 띄는 모든 것, 즉 여러 가지 미신, 당치도 않는 두려움, 그 불안한 넋들의 신경과민, 되도록 페스트 이야기는 안 하고자 원하면서 결국에는 그 이야기만 하는 버릇, (…) 그리고 초초해하고 예민한, 요컨대 불안정한 감수성, 망각의 죄로 변형하고 바지 단추 하나만 잃어버려도 안절부절못하는 그들의 감수성, 이 모든 것의 공범자인 것이다.'

오랑 시 시민들은 이웃을 믿을 수 없음을, 나 자신도 모르게 그의 페스트에 감염될 수 있고, 방심한 틈에 병균이 옮을 수 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곳은 불신과 의심으로 가득했다. 페스트 환자에게 열성을 다해도 별다른 치료법을 찾지 못한 리유는 절망한다. “페스트 환자가 된다는 것도, 환자가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은 더욱더 피곤한 일이다. 그렇게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피곤해 보이는 것이다.”
시간이 흘려 해가 바뀌자 페스트가 자신이 나왔던 알 수 없는 어떤 야수의 굴로 다시 기어들어갈 무렵, 도시 안에는 그 퇴각에 당황해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경찰에 쫓기고 있는 코타르였다. 공교롭게도 페스트가 물러나고 사람들이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할 때 그는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이유는 불명확하지만 새롭게 시작하고자 했던 기회가 사라진 것에 대한 절망감도 작용한 것 같다.
페스트는 그 자체로 전쟁과 같은 참혹한 재앙이다. 작가는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이성이 얼마나 나약한지를 암울하게 보여준다. 인간들의 헛된 욕망과 거짓된 삶은 도시를 죽음으로 물들인다. 죽음이 난무하는 폐쇄된 공간에 놓인 인간들의 처절함과 고통이 가득하다. 어둠의 그림자는 이웃을 덮치고, 사랑하는 연인과 가족들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하지만 절망이 깊어질수록 희미한 희망의 불빛은 현실을 극복하는 힘이 된다. 인간에게 죽음은 또 다른 시작이다. 소설의 마지막 문구가 여전히 마음에 남는다.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 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도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가지고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정부는 국가적 재난이 발생하면 컨트롤 타워 부재와 능력부족을 여실히 드러낸다. 정치권은 사분오열 나뉘고 내로남불로 값진 시간을 허비한다. 작은 실수에도 언론과 시민들은 비난과 비판을 무수히 쏟아낸다. 내 탓은 없고 네 탓만 하다 보니 선제적 대응보다는 모든 것을 휩쓸고 난 다음에야 대처방안이 미흡했다고 후회한다. 코로나 19가 조속히 종식될 수 있도록 한발 빠른 강력한 통제를 해야 한다. 2020년의 봄은 유달리 늦게 올 모양이다.

류재준은 광주 출신으로 광주대동고를 졸업한 뒤 전남대학교에서 도시·지역개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키우리라 독서클럽’, ‘광주시청 책사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며, 바쁜 일상 속에서 매주 한권의 서평을 쓸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는 책을 읽었을 때 과연 얼마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지. 또한 그것이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알 수 없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책을 읽는 삶이 책을 읽지 않는 삶보다 훨씬 더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오늘도 인생을 변화시킬 책을 찾아 읽는 것을 멈추지 않는 그는 ‘오늘하루 책읽기 멘토’, ‘런치 북 토크’, ‘독서를 통한 진로탐색’, ‘나를 찾아가는 인문학 책읽기’, ‘삶의 변화를 이끄는 책읽기’, ‘저자와의 대화’ 등의 주제로 대학과 단체등에서 다양한 강연과 활동을 펼치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류재준의 인생독서”, “류재준의 서평독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