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는가? 늦은 밤 《크눌프》를 읽고 난 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답답함에 창문을 열고 한참을 멍하니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별빛이 보인다. 저 빛은 몇 년 전에도 같은 자리에서 빛나고 있었겠지만, 오늘은 유독 새롭다. 요즘 내 머릿속은 정리되지 못한 서랍 속 널브러진 물건들처럼 헝클어지고, 보잘것없는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점점 짙어지는 허무함으로 인해, 여전히 미로 속에 갇혀 헤매는 듯하다.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을까? 목표를 잃은 듯 걸음을 멈춘 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얻고자 하면 반드시 비워야 하는데 비우기가 너무나 어렵다. 우리네 인생이 어차피 방랑자 같은 삶이 아닌지 자문하지만 크눌프 같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자만이 해낼 수 있는 여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한다. 허황된 욕망과 거짓된 삶은 무거운 바윗돌을 등에 짊어지고 가파른 절벽을 오르는 것 같은 고통이다. 이 책은 전쟁(제1차 세계대전) 이후 출간되었지만 작품이 쓰인 것은 1907년에서 1914년 사이로 나름 평화가 유지되고 있던 때로 추정된다. 한가로운 독일의 소소한 일상이 작품에 그려진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크눌프》의 구성은 초봄, 크눌프에 대한 나의 회상, 종말 이렇게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크눌프는 자유로운 방랑자다. 가족, 직장, 집 아무것도 갖지 않았다. 오랜 방랑 생활로 인한 육체적 고통 역시 최악의 수준이다. 하지만 그는 진실하고, 침착하고, 현명한 사고를 가졌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그가 여러 사람과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이유다. 삶의 여정 속에서 인간관계란 복잡하면서도 매우 중요하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을 친구로 만나지만 그들 각자의 삶을 존중하고 삶의 의미를 효과적으로 부여해준다. 다섯 아이를 가진 재단사 슐로터베크는 과거에는 진실한 신앙인이었지만 지금은 먹고살기 위한 생활에 찌들어버린 처지를 절망하고 비관하고 있었다. 크눌프는 예전에 입양시켰던 아들 이야기를 하면서 그에게 아이들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크눌프는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번민하고 괴로워하면서도 구원과 진실을 찾고자 노력한다. 그동안 마음속 깊이 품고 있던 의문과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주었던 문제를 가지고 신과 대화를 하면서 눈 덮인 숲속을 걷는다.
신께서 말씀하셨다.

“난 오직 네 모습 그대로의 널 필요로 했었다. 나를 대신하여 넌 방랑하였고, 안주하여 사는 자들에게 늘 자유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씩 일깨워주어야만 했다. 나를 대신하여 너는 어리석은 일을 하였고 조롱받았다. 네 안에서 바로 내가 조롱을 받았고 네 안에서 내가 사랑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나의 자녀요, 형제요, 나의 일부이다. 네가 어떤 것을 누리든, 어떤 일로 고통 받든 내가 항상 너와 함께 했었다.”

“너는 인생이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했지만 실은 너의 인생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 희망의 빛이 되어준 것이다.”

대체 무슨 이유로 크눌프는 자유로운 영혼의 방랑자가 되었을까? 운명의 두 여인 프란치스카와 리자베트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프란치스카의 사랑으로 인한 희망과 버림받음에 따른 절망, 리자베트와의 운명적인 만남과 이별, 그리고 죽음이다. 사랑은 그를 성장시켰지만 반면에 방황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별과 죽음에 따른 고통은 결국 신의 영역에 대한 성찰과 인간의 나약함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다. 때문에 자의 반 타의 반 또는 주도적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한번쯤 일상에서 잠시 빠져나와 자신의 마음을 비추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류재준은 광주 출신으로 광주대동고를 졸업한 뒤 전남대학교에서 도시·지역개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키우리라 독서클럽’, ‘광주시청 책사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며, 바쁜 일상 속에서 매주 한권의 서평을 쓸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는 책을 읽었을 때 과연 얼마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지. 또한 그것이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알 수 없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책을 읽는 삶이 책을 읽지 않는 삶보다 훨씬 더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오늘도 인생을 변화시킬 책을 찾아 읽는 것을 멈추지 않는 그는 ‘오늘하루 책읽기 멘토’, ‘런치 북 토크’, ‘독서를 통한 진로탐색’, ‘나를 찾아가는 인문학 책읽기’, ‘삶의 변화를 이끄는 책읽기’, ‘저자와의 대화’ 등의 주제로 대학과 단체등에서 다양한 강연과 활동을 펼치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류재준의 인생독서”, “류재준의 서평독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