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조인뉴스, 서동례 어르신의 일터였자 삶의 터전인 함평읍 한재골 집 재봉틀 앞에서

[조인뉴스 = 김나예 기자] 서동례님의 주거공간으로 통하는 길은, 한재골 초입에 차를 세워두고 직접 걸어가야만 찾아갈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공기 좋은 숲길을 헤쳐 제법 거친 숨을 내쉴 만큼 약 5분이 흘렀을까, 혼자 지내시는 소박한 집이 나온다. 집으로 향하는 길을 걷고 있노라면 한여름은 덥고 한겨울은 추울 수밖에 없는 곳, 주위를 살펴보면 가로등 하나 없어 빨리 해가 지는 계절의 귀가는 어떨지 걱정이 앞선다. 초행자는 찾기 힘들 위치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 서동례어르신은 방문객을 위해 말없이 마중을 나와 계셨다. 손님을 앞세우고 한없이 뒤를 봐주며 본인도 더울 법한 데 쓰시던 부채로 앞서가는 사람을 위해 연신 부채질을 하시며 미안함을 표한다. 이 글만 보면 ‘이렇게 힘든 곳을 차 없이 어떻게 걸어갈까?’ 머릿속에 힘듦만 저절로 그려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서동례님은 힘들지 않다하시고 본인의 인생을 이제야 진정히 즐기는 소위 ‘찐행복’을 누린다고 하신다. 걸어서 이 길을 오갈 수 있음에 감사하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시간도 보내기도 하고 노인 일자리 사업 참여로 용돈벌이와 여가 생활을 할 수 있는 ‘세상과의 통로’가 되어주는 이 길을 하루도 빠짐없이 통과할 뿐이다.

통행의 고단함은 커녕 매번 감사함을 느끼는 시간이다. 걸어 다니는 자체가 행복이라고 생각하신다. 서동례님은 위암 수술을 받은 지 십 년도 채 안 되었고, 최근에는 폐 건강마저 이상 소견이 보여 일 년에 두세 번을 서울로 검진 다니신다. 자녀분들은 서울로 아예 올라오라고 하는 데도 오랜 시간 버텨온 이 집을 떠나는 것이 더 건강을 해치는 기분이라며 한사코 거절한다. 아플 때는 걷는것 자체가 힘들었다는 데 체중도 빼고 조금씩 걷는 운동을 병행하여 지금은 이렇게 거동에 무리 없게 됐다. 다만 60년이 넘는 시간을 바느질로 자식을 키우셨던 분이라 직업인의 고질병에 연세 때문에 건강 문제가 겹쳐 어딘가 앉고 설 때는 꼭 지탱할 게 있어야 한다. 특히 암 투병은 나이에 상관없이 본인과 가족 모두에게 힘든 고통일 텐데 평생을 자신의 인생보다 가족의 인생을 위해 바느질로 인생의 반 이상 을 일한 그녀의 인생을 비춰보니 세상이 불공평하다.

사진-조인뉴스, 서동례 어르신이 재봉틀을 다루는 모습

"60년 외길인생, 바느질이라는 기술이 있었기에 지금도 이렇게 용돈 벌어서 잘 살 수 있지 않습니까? 내가 항상 감사합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우리 늙은이들이 너무 오래 살아서 젊은이들한테 피해 줄까 봐."

한재골 외딴집, 이 집은 서동례님에게 각별한 사연이 있다. 자식들을 교육할 날이 까마득한데 남편분이 눈물로 호소하며 이른 나이에 퇴직을 감행하고자 했다. 결코 말리지 못했던 남편의 퇴직, 당시 남편의 퇴직금으로 15,000평의 이 땅을 사서 과수원을 했다. 이사 온 직후는 밤나무 농사가 잘됐다. 그러나 예기치 않게 찾아온 흑벌레가 밤나무를 다 갉아 먹은 사건 때문에 가정에 시련이 생겼다. 그 일로 마음고생을 하시다 남편이 세상을 먼저 떠나셨다. 그녀는 남은 5남매가 아비 없이 자랐다는 부정적인 의견을 듣게 할 수 없었다. 오로지 아이들 뒷바라지를 위해 바느질 기술로 삶의 전선에 뛰어든다. 고향 해남에서 할아버지도 독자, 아버지도 독자인 집안의 장녀로 큰사랑을 받고 자랐다. 통신사였던 아버지는 사춘기인 그녀를 걱정하며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에 늘 데리고 이사를 다니셨다. 그런 아버지께 죄송한 마음이 커서 경제적으로 힘든시간에도 혹여 눈물 바람으로 편지를 쓸까봐 편지 한 장을 쓸 수 없었다. 시댁의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아버님은 시집가는 딸을 위해 먹고 살 쌀을 동봉해 주셨다. 그 쌀이 떨어져도 자식의 도리로는 아버지께 해를 끼칠 수 없다는 확고함이 있었기에 그 후로 도움의 손길을 전혀 내밀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그녀 역시 자연스레 어릴 적부터 독학으로 익히게 된 바느질로 수십 년 생계를 이어갈지는 예상 못했을 것이다. 밤낮 가리지 않고 광주로 바느질감을 구하러 다니며 옷을 만들어 납품하고 자녀들이 결혼했을 때는 손주의 육아까지 병행하셨다.그렇게 자식들을 지켜낸 그녀의 인생의 고단함이 우리에게도 선명하게 그려지는 데 그 인생을 살아낸 어르신에게는 얼마나 생생할까. 더구나 세상을 원망할 법도 한데도 그저 종교의 힘은 너무 커서 남을 미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마음에 존경심이 앞섰다. 인터뷰 내내 그저 자식들에게 더 좋은 걸 해주지 못해 안타깝고 오랜 시간 생사를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 아들을 그리워하는 엄마의 마음까지, 힘들었지만 그 고통을 되뇌지는 않는다고 한다. 지금 여생을 즐길 수 있음에 감사함을 표출할 뿐이다. 서동례님은 지난한 인생을 살아오셨지만 숨겨지지 않는 강인함이 있는 분이다.

사진-조인뉴스, 남편의 퇴직금으로 마련해 옮겨왔던 과거의 과수원의 터이면서 서동례 어르신이 현재도 거주중인 집 앞에서

“2004년에는 함평 엑스포장에서 수의를 만들어 팔고 했어요. 바느질을 60년 넘게 했지만 우리도 계속 나이가 먹어요. 죽을 때 되면 기술을 전수받을 사람이 있으면 좋잖아요. 재봉하는 과정부터 전부 가르쳐 주니까 배우는 이들이 다들 좋아해서 참 흐뭇합니다.”

지금은 서른 명의 어르신들이 함께하는 ‘신의 합창단’ 소프라노이기도 하다. 대회 참가도 했을 만큼 여전히 노래 연습에 빠지지 않는다. 천주교 신자로서 성경 공부도 꾸준히 하시고 성서도 일일이 손 글씨로 적는데 그 노트만 해도 몇 권인지 셀 수가 없다.대학에 들어간 손녀가 부른 민들레 홀씨라는 노래 가사를 손수 썼다며 행복하게 이야기하는 모습, 바닥에 놓인 직접 그린 그림 공책 등등. 집 안의 모든 삶의 흔적들이 그녀의 강조를 멈추지 않던 기술 이면의 시간을 보여주는 듯했다.

사진-조인뉴스, 서동례 어르신의 집 안 곳곳 본인의 여가를 보내시는 흔적(안경과 손글씨로 빽빽하게 채워진 공책 등)

특히 방 한쪽, 바느질하는 기계가 무심히 놓여있는 협소한 테이블과 의자를 보노라면, 수십 년 동안 수많은 개인의 옷을 바느질하며 만들어낸 것에비해 너무도 검소하다. 서동례님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난 공간을 보니 얼마나 고단하고 외로운 시간이었을지 생의 녹진함이 느껴진다. 어르신의 집은, 인생이 생생하게 그려지는 인생 미술관 그 자체였다. 긴 시간을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옷을 만들며 일했던 그녀는, 이제는 生이 아닌 死의 편을 보며 일하고 있다.

죽은 사람을 위한 옷, 유려한 바느질 실력을 바탕으로 노인 일자리 사업인 ‘수의 만들기’에 참여하게 되었고 지금껏 하고 있다. 바느질로 생계를 책임졌던 서동례님의 실력은 장인에 가깝다. 그 외에도 15년 넘게 수의를 만들게 되면서 꾸려진 인원들에게는 직접 재단하는 법, 재봉 등 바느질 관련한 기초적인 기술을 가르쳐 줬고, 요즘은 7명의 인원이 분담하여 만들고 있다. 인생이라는 여로의 끝자락에 와 있다 해도 세상 떠나는 순간까지 늘 그랬듯 주어진 일을 하며 살겠다는 서동례 어르신. 매사 감사함이 기본값인 그녀의 인생을 마주한 의미는 뜻 깊다. 조금만 힘든 일을 마주해도 실패를 논하는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많은 귀감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