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조인뉴스, 한국국악협회 함평군지부장 박햄임씨

[조인뉴스 = 조영인 기자] 한국국악협회 함평군지부의 박행임 지부장은 지역을 대표하는 예술가로 꼽힌다. 그녀는 2017년부터 아버지의 대를 이어서 함평군지부를 이끌고 있다. 올해 연임에 성공했다.

박 지부장의 인생행로에는 국악처럼 희로애락이 다 담겨 있다. 서른한 살, 유방암 투병을 견디기에는 어린 나이였을 것이다. 처음부터 병원에서는 좋지 않은 결과를 미리 고지해 줬다 한다. 하지만 힘든 항암 치료를 견디고 삶을 지속할 수 있는 기적을 얻었다. 쾌차의 가능성이 보이자 어렸을 때부터 간직해 온 국악의 길에 들어섰다. 국악을 향한 사랑과 의지와 용기만 있다면 어떤 아픔에도 극복할 수 있다는 본보기를 그녀는 확인시켜 줬다.

“2008년도에 정식으로 국악협회 소속 함평나르다 예술단을 만들었어요. 함평군에 신청하고 나르다예술단을 출범시켰죠. 바로 활동에 들어갔습니다. 십시일반 사비를 털어 2008년 12월에 나르다 예술단 발표회를 크게 하게 됐지요.”

박행임씨가 30대 때만 해도 모든 위치에서 막내였다. 이미 운영되고 있는 함평국악협회는 어르신들이 주축인 상태였다. 어르신들만 활동하는 함평국악협회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발전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는 친정아버지 판단과 권유로 함평으로 터전을 옮겨 정식으로 함평국악협회에 몸담고 활동하게 됐다. 그녀는 당시 목포에서 주 활동을 했는데 이후 함평에 와서 꾸린 첫 일이 봉사단을 만든 것이다.

목표는 젊은 사람들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국악 대중화 실현이었다. 90년대만 해도 사물놀이가 보급이 덜 된 시절이었기에 사람들에게 낯설 수 있지만 흥미를 이끌 만한 사물놀이를 작품으로 보여주기로 결심했다. 그 일이 인연이 되어 젊은 사람들의 확보에 성공했고 어르신들과 젊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당시 함평국악협회 회원수가 백 명을 넘겼다고 한다. 함평국악협회 부속으로 함평나르다예술단이 있게 됐다. 여러모로 활성화가 많이 되었고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다보니 실기도 알고 대외적으로 활동한 사람이 국악협회를 이끌어갔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모였고, 투표를 통해 마침내 그가 지부장을 맡게 되었다.

사진-조인뉴스, 어르신을 찾아 회관에서 봉사활동 하는 모습

“국악은 하여튼 어르신들이 다 좋아하셔요. 때로는 울고 웃고 그래요. 어르신들이 왜 그러냐면요, 그 판소리에는 희로애락이 다 들었어요. 사실은 청승맞다고 하지만 즐거운 대목이 참 많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어르신들 속에서 살고 함께 해온 세월이 몇십년이 되다 보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봉사활동을 하며 살고 싶다는 소박한 희망과 보람을 이야기하는 박행임씨. 어떤 대목을 불러드릴 때는 소리로 대신 전해줬다며 감동에 눈물 흘리고 웃으시고, 보고 싶으니 자주 와달라는 반응을 주시는 어르신들이 더없이 소중하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소리로 표현하는 일이 쉽게 이룬 일이 아닐 것이다.

사진- 자료제공 한국국악협회 함평군지부 제41회 남도가요제 단체 사진

사진-자료제공 한국국악협회 함평군지부, 함평나비대축제에서 굿거리 입춤을 선보이고 있는 회원들

판소리의 시작은 춘향가였는데 목포에 계신 춘향가 문화재 ‘안애란’ 선생님께 배웠고 현재는 흥부가 문화재인 '김순자' 선생님의 흥부가 이수자가 되었다. 그런 노력의 결과가 계속 쌓여 2017년도에 전라남도의 큰 국악제에서 함평국악협회가 생긴 이래에 39년만에 종합대상을 받은 쾌거도 이뤘다.

“시대가 그러더라구요. 우리 전통이 갈수록 많이 퇴색되어가고 있어요. 안타까운 현실이에요. 국악만 그런 것도 아니고 다양한 전통들이 보급되고 대중화하기 어려운 실정인 거죠. 이렇게 큰 상을 거머쥘 때는 상당한 노력과 숨은 공로의 분들이 있어서 이렇게 상을 받을 수 있었죠.”

사진-자료제공 한국국악협회 함평군지부, 한국국악협회 함평군지부 회원들의 장구 연습 모습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인원 제한이 생기다보니 번갈아 가며 모일 수밖에 없지만 여전히 연습에 소홀하지 않는다. 지부장을 비롯해 구성원들도 꼬박꼬박 나와 일주일에 4-5일은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우리지역에서 열리는 민속예술제, 남도국악제 등 기본적인 큰 행사들을 준비하고 있다.

박 지부장는 젊은 국악인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늘 잊지 않는다. 젊은 국악인이 설 자리가 부족한 인식은 본인이 국악을 시작한 30대 때도 그랬고, 본인의 딸인 임경선씨도 가야금 부분 대통령상을 받은 실력자로, 같은 국악의 길을 가고 있어서일까. 자신의 세대와 현재 딸 세대인 지금도 젊은 국악인의 영향력이 크게 다를 바가 없을 터이다. 젊은 국악인들이 고향에 남아 전통을 계승하려면 개인의 능력을 펼칠 수 있게 하는 제도의 뒷받침이 필수다. 젊은 국악인들이 고향을 떠나지 않고 실력을 펼칠 수 있게 도와줄 문화적 혜택을 제공해주는 포용자들이 필요하다. 전통을 계승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실력자, 지역민 인재를 굳이 다른 지역으로 떠나가게 만드는 무관심이 무형문화재 발전을 저해하게 하고 인적 자본을 아쉽게 놓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매우 아쉬울 따름이다.

사진-조인뉴스, 한국국악협회 함평군지부장 박행임씨

사진-조인뉴스, 한지공예 등 전통을 아우르는 다양한 일을 회원들과 꾸준히 하고 있는 박햄임씨

“저는 인자 나이도 먹고 건강도 좀 그래서 뒤로 물러나야죠. 옛날에는 풍류의 고장이 함평이었는데 오늘날에는 많이 보급이 못 되고 낙후됐지요. 앞으로는 젊은 청년 국악인들이 제가 못했던 것들을 이어서 대중화를 시켜주길 바라고 기도할 뿐입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젊은 국악인들이 유입될 수 있도록 행정에서도 관심 가져주고 또 머물 수 있게끔 여건을 만들어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에요. 저희 역할을 여기까지인 것 같아요. 앞으로 젊은 청년들이 끌어가는 거, 그것밖에 없어요 제 소원은…”

작년부터 시작된 코로나의 위기에 지역민들은 감정에 더 요동쳤을 것이다. 개인이 힘쓰지 못하고 그저 무방비로 팬데믹을 만나게 됐을 때 발생하는 인간의 희로애락은 민족의 얼을 품는 우리음악, 국악같은 무형문화재가 치유해주지 않을까. 더불어 함평이 젊은 예술가는 떠나가고 어르신만 남는 것이 당연한 지역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박행임씨의 바람을 이어받아 국악의 정신을 높게 보는 한 국민으로서, 함평이 풍류의 고장으로 옛 명성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나아가 전통 보급화에 진심인 사람들이 스스로 지키고 힘쓰고 있는데 그 장소에 조금만 더 큰 날개를 달아줄 수는 없을까, 이상하게 마음이 계속 쓰인다. 마음이 계속 쓰이게 하는 것 또한 국악의 힘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