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7(월)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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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영원한 인도의 어머니, 갠지스강이 흐르는 바라나시입니다. 인도인들은 이곳은 ‘홀리시티(Holy City)라고 부릅니다. 그렇습니다. 인도인들에게는 ’성스러운 도시’입니다.
그들이 ‘강가(Ganga)’라 부르는 갠지스에서 그들은 지금 엄숙하고도 희열에 찬 표정으로 목욕을 하고 있습니다. 남녀노소가 따로 없습니다. 나로서는 발을 담그기에도 꺼림칙한 그 강물에서, 꼬마들은 알몸으로, 성인 남자들은 속옷만 입은 채, 그리고 여자들은 고운 사리와 함께 물 속에 잠깁니다. 성스러운 물엔 온 몸을 담그는 그 순간 그 동안 지어왔던 모든 죄가 씻겨 나갈 것일까, 그들에게는 생애 더 이상의 기쁨은 없을 것 같다는 표정이 얼굴에 그려집니다. 몇 명의 수행자들은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잠겨 있습니다.
시멘트 계단 한 쪽을 차지한 갓트에서는 한창 불꽃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생을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현장입니다.
황금빛 비단에다 꽃으로 단장한 주검이 막 화장터에 도착했습니다. 이 주검은 성스러운 갠지스 강물에 마지막으로 목욕을 했습니다. 그 사이 인부들은 장작을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목욕을 마친 망자는 장작더미 위에 누여집니다. 몇 개비의 장작이 그를 덮습니다. 이윽고 장작더미 아래에 불길이 붙었습니다.
처음 불꽃은 약하게 타 오릅니다. 연기만 거세게 날 뿐, 망자는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다 30여분 후, 짙은 냄새가 주위를 진동하기 시작합니다. 불꽃을 화려하게 날리며 불길이 올랐습니다. 이제 불길은 완전히 망자를 휘감았습니다. 그를 가렸던 비단천은 불꽃에 이미 사그라졌습니다. 망자의 발이 장작더미 한 쪽으로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의 온 몸이 심하게 일그러집니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몸부림인 듯 합니다. 이렇게 장작더미에 누워있기를 3시간, 그는 한 줌의 재만 남기고 사라집니다. 웃통을 드러낸 인부는 잿더미를 휘저어서 몇 개의 뼈다귀를 추려냅니다.
그토록 질겼던 이승과의 인연이 이렇게 해서 완전히 끊어졌습니다. 그런데도 슬픔에 잠긴 유족은 없습니다. 오열도 없고 통곡도 없이, 가족들은 기쁜 마음으로 망자를 떠나보냅니다.
이들에게 있어 죽음은 또 하나의 탄생. 그래서 결코 슬퍼할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이승에서 지은 죄와 업보를 성스러운 갠지스강에서 모두 씻김 받았으니 더 이상 망설일 이유도 없습니다. 고통스러운 윤회로부터 해탈되는, 더 이상 바랄 수 없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있어 죽음은 슬픔이 아니라 기쁨이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불사름의 의식은 쉼 없이 계속됩니다. 예닐곱 곳에서 동시에 불꽃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쉴 새 없이 주검은 밀려와 갠지스 강물에 담가졌다가 장작더미 위에 오르는 죽음의 순례가 끊이지 않고 이어집니다.
이렇게 불꽃만을 바라보며 한 나절을 보냈습니다. 그 사이 저는 오직 한 가지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원초적인 물음. ‘인생이란 무엇이고, 삶이란 어떤 것이며, 죽음이란 또 무엇인가.’
바라나시가 보여주는 답은 단 하나, 이렇게 불사름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는 것. 장작더미에 누워 하늘을 한번 쳐다보는 사이 모든 게 완결됩니다. 그리고 흐르는 강물 위에 한 줌의 재로 뿌려지면 지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게 인생이요, 삶이며 죽음인 것입니다.
또 이곳에 실려 오기까지 부유한 자는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가난한 사람은 그저 거적에 둘둘 말려 왔을지라도 강물에 들어갈 때는 똑같은 분량, 똑같은 색깔로 흩어지는 게 삶과 죽음인 것을….
사자의 재가 뿌려지는 강물 바로 아래에서는 여전히 산자들의 목욕의식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갠지스강은 오늘도 말없이 흐르면서 방문자들에게 죽음을 생각하라고 읊조립니다. 그러면 삶과 인생이 보일 거라며….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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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수는 늘 꿈을 향해 어딘가로 떠날 준비가 된 자유인. 골짝나라 곡성의 산골마을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공부하고 기자가 됐다. 30년 넘게 광주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무작정 떠난 한달간의 인도여행’ ‘사랑해서 떠난다’ ‘新만주아리랑’ 등 몇 권의 여행기를 썼다. 관광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땄으며, 이제는 보다 더 잘 놀기 위해 궁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