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들을 만나는 순간 형용할 수 없는 모습에 할 말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들은 먼 곳에서 왔습니다. 그렇지만 그 길이 얼마나 먼 곳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사실은 그들이 쉽게 걸어서 오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그들은 온 몸을 던져 기어서 왔습니다. 이른바, 오체투지(五體投地)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그들은 이렇게 사원에 도착했습니다. 오체투지는 인간이 가장 낮은 자세로 부처님께 다가가는 모습이랍니다.

몰골은 이미 사람꼴을 버렸습니다. 여름이지만 두터운 겨울옷을 입었는데, 성한 곳이 한군데도 없습니다. 무릎과 팔꿈치는 닳아서 너덜거리고 소매 끝은 땟국물로 반들반들 합니다. 옷으로서의 기능은 이미 포기한 상태입니다.



저는 지금 티벳 라싸의 조캉사원 앞에 서 있습니다. 한 낮의 작열하는 태양이 내리 꽂는 열기에 잠시 현기증이 일었지만, 지금도 광장 앞을 온 몸으로 기어오는 순례자들을 보면서 겨우겨우 의식의 한자락을 붙잡고 있습니다.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요, 그들은 무엇을 그리도 간절히 기원하며 온 몸을 던지는 것일까요. 아무리 무미건조한 의식을 가진 이방인이라 할 지라도 그들을 만나면 자연스레 이러한 생각에 빠져들게 될 겁니다.

조캉사원은 티벳인들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성지입니다. 조캉이란 티벳어로 '부처의 집'이라는 뜻이구요. 이 사원은 7세기 중엽 창건된 티벳 최초의 목조건축물입니다. 본전에는 불교를 이 땅에 전해 준 당나라의 문성공주가 시집올 때 가져온 불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때문에 티벳인들의 성지순례는 이곳 조캉사원에서 마무리 됩니다.

사원 앞 돌바닥은 반들반들 합니다. 엎드리면서 스치는 수억번의 손바닥으로 굴곡을 지며 깊게 파였습니다. 제대로 서 있을 기력도 없는 한 노인은 가족들의 부축을 받으면서도 오체투지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정문에는 사원안으로 들어서려는 순례자들이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오직 하나 부처님을 뵙겠다는 일념으로 먼길을 그렇게 기어 온 순례자들의 최종 목적지가 바로 법당입니다. 사원안은 다른 곳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대신 108개의 커다란 마니차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티벳인들은 빠짐없이 이 마니차를 돌리며 한바퀴 돌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왜 이렇게 순례의 길을 걷는지, 느낌조차 함께 할 수 없지만 그들을 따라 마니차에 손을 대며 똑같이 돌아 봅니다.

사원안을 돌다가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가니 곧바로 지붕입니다. 바로 눈앞에는 티벳의 상징, 포탈라궁이 웅장한 자태로 서 있습니다. 허름한 도시 뒤로는 흰눈이 덮힌 산들의 모습이 신비롭습니다. 아름다운 자연과 가장 낮은 자세로 기원하는 티벳탄들의 모습이 묘하게 대비를 이룹니다.

다시 나온 사원앞, 쉽게 자리를 뜰 수 없었습니다. 법당 안을 향한 순례자들의 오체투지가 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늘에 의지해 철퍽 주저 앉았습니다. 그리곤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봅니다. 주위에는 마니차를 돌리고 있는 티벳인들이 유독 많았습니다. 마니차 안에는 경전이 두루마리로 들어 있는데, 이 것을 한바뀌 돌리면 경전을 한 번 읽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때문에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은 경전을 읽는 대신 이 마니차를 돌린다고 하는군요. 크기가 다양한 마니차를, 걷거나 앉아서 쉼없이 돌리며 웅성웅성 주문을 외웁니다

30여분 가까이 그렇게 앉아 있으니, 꾀죄죄한 어린아이가 새까만 손을 내밀며 접근합니다. 그런데 그 순간 한 수행자가 어린아이의 손길을 가로 막습니다. 상념에 빠진 이방인을 방해하지 말라는 뜻이겠지요.

남루하지만, 절대 가난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스치고 지나갑니다.

이경수는 늘 꿈을 향해 어딘가로 떠날 준비가 된 자유인. 골짝나라 곡성의 산골마을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공부하고 기자가 됐다. 30년 넘게 광주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무작정 떠난 한달간의 인도여행’ ‘사랑해서 떠난다’ ‘新만주아리랑’ 등 몇 권의 여행기를 썼다. 관광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땄으며, 이제는 보다 더 잘 놀기 위해 궁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