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 함피 콜람

여행은 늘 새로움과의 만남입니다. 예상했든, 예상하지 못해든, 기대했든, 기대하지 않았든지 여정에는 항상 이색적인 뭔가가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여행이 그래서 더욱 흥분되고 스펙터클하지 않던가요.

볼수록 정이 가는 마을, 인도의 함피에서 그러한 풍경과 마주칩니다.
아침부터 상쾌한 풍경이 내 발걸음에 호기심을 더해 줍니다. 골목길을 나서는데, 어느 집 대문 앞에 그려진 예쁜 그림 장식이 눈에 들어옵니다. 빗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길 위에 기하학적인 도형이 그려져 있었던 것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암소·코끼리 등 동물도 있고 연꽃·공작이 그려진 것도 있었습니다. 아침 일찍 그 집의 누군가가 정성껏 그린 것이 분명합니다.
옆집 대문 앞에 그려진 그림은 색깔까지 들어가 있습니다. 백묵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원색의 물을 들인 쌀가루로 치장한 것입니다. 서너 집이 계속해서 이렇게 장식이 돼 있고 또 몇 집 건너 집 앞에도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도형이 그려져 있습니다.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누가, 왜, 무슨 목적으로 이러한 그림을 그린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아침부터 남의 집 대문을 열고 들어가 물어 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림을 밟지 않으려고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는데 마침 엽서와 담배를 파는 작은 가게가 나타났습니다. 엽서를 한 장 고르면서 “저게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젊은 주인은 “콜람”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누가 그렸느냐”고 다시 물으니 “그집 아낙네들이 그린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왜 그렸느냐”고 재차 물으니 “그렇게 하면 집안에 복이 들어온다”고 너무나도 간단하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인도 함피 전경

처음 본 콜람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도 민속미술인 콜람은 남인도 여인들이 매일 아침 쌀가루, 돌가루, 꽃잎 등을 사용해 집 앞이나 거실 등에 그리는 기하학적 문양입니다.
신들이 땅으로 내려올 때 발을 디디는 받침대로 존중받는 콜람은 신의 축복을 집으로 불러들이는 기도이자 명상으로 마음의 평화를 가져오는 예술이기도 합니다.

이방인이 콜람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 신기했는지, 나이 지긋하신 노인이 덧붙여 설명해 줍니다. “쌀가루로 그린 것은 그 집에 들어오는 개미나 다른 미물들에게 먹이를 제공한다는 의미도 함께 띠고 있다”고 하십니다. 특히 결혼이나 축제 같은 기쁜 날에는 더욱 정성을 들여 화려하게 꾸미는데, 이것은 ‘작은 벌레들과도 기쁨을 함께 나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답니다.
그러면서 노인은 “지금은 백묵 등으로 간단하게 그리기도 하고 상당수 집에서는 아예 그리지도 않는 등 시간이 흐를수록 삶에 있어서 의례와 진지함이 사라지고 있다”면서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지구별 여행자는 인도 남부지방 민중들이 늘 신과 함께 기도하며 살아가는 한 단면을 오늘 아침 마주한 콜람에서 고맙게 확인합니다. (1978년 11월)

이경수는 늘 꿈을 향해 어딘가로 떠날 준비가 된 자유인. 골짝나라 곡성의 산골마을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공부하고 기자가 됐다. 30년 넘게 광주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무작정 떠난 한달간의 인도여행’ ‘사랑해서 떠난다’ ‘新만주아리랑’ 등 몇 권의 여행기를 썼다. 관광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땄으며, 이제는 보다 더 잘 놀기 위해 궁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