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반. 32X24cm. 2017

참으로 경건한 순간입니다.
주황색 가사를 걸친 스님들의 행렬이 참으로 진지합니다.
민초들과 스님들이 연출하는 풍광은 그 자체가 종교 의식 같습니다.
여기는 순수의 땅 라오스의 루방프라방, 그리고 시간은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아침입니다.

라오스 제2의 도시이자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1995년)된 루앙프라방은 작은 도시입니다.
인근 나라인 태국의 방콕이나 치앙마이에서 인파에 시달린 것에 비하면 한적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자전거를 빌려 한나절 돌면 마을 곳곳을 모두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여행자는 모처럼 긴장이 풀리고 발걸음이 여유로워집니다.

이곳 루앙프라방에서 여행자가 꼭 만나고 싶은 장면은 그 유명한 탁발 행렬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젯밤 늦게 루방프라방에 도착해서 야시장까지 둘러봤지만 새벽 일찍 일어났습니다.
새벽 6시, 시시왕왕 거리는 아직 어둠에 싸여 있습니다.
화려했던 야시장은 흔적도 없고, 길따라 돗자리와 낮은 플라스틱 의자만 끝도 없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조금 있으니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합니다.
집에서 정성껏 찰밥을 지어 바구니에 넣어 왔습니다.
놓여 있던 키 낮은 의자들이 빈자리가 없을 만큼 공양하려는 이들로 가득합니다.
이들은 조용히 눈을 감고 탁발에 나설 스님들을 기다립니다.

점점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합니다.
어슴푸레 기운이 도로 위에 내려앉고 선선한 새벽 공기 사이로 낮은 웅성거림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날마다 동이 트는 순간, 어김없이 긴 주황색 옷자락 행렬이 다가옵니다.
탁발에 나선 승려들입니다.
아직은 미명이 남아 있는 하늘 아래 나이 지긋하신 승려를 앞장세워 스님들의 탁발 행렬이 이어집니다.
탁발은 통을 가지고 가는 승려들에게 보시를 하는 주민들이 음식을 담아 주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길게 늘어서 앉은 공양주들이 합장하며 준비한 음식을 조금씩 떼어 스님들에게 건네느라 분주합니다.
온화한 눈빛으로 맞이할 뿐, 스님들께는 말도 걸지 않습니다.
정성스러운 손길로 음식을 건넬 뿐입니다.
외국인 여행자들의 모습도 더러 눈에 띕니다.
스님께 드릴 음식을 산 다음 현지인들과 함께 앉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탁발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보시입니다.

탁발은 매일 새벽, 승려들이 일용할 양식을 마련하는 종교행사입니다.
불교국가인 라오스는 아무리 깊은 산골일지라도 사원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곳에서 스님들을 만날 수 있다.
라오스의 젊은이들은 누구나 일생에 한번은 승려 생활을 한답니다.
승려는 생산활동을 하지 않기에 탁발로 끼니를 해결합니다.
탁발은 수행자인 스님에게도, 보시하는 일반인에게도 신성한 의식입니다.
불교국가인 라오스에서 탁발은 수행자들에게는 간소한 삶을, 속인들에게는 보시를 통해 공덕을 쌓을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스님들은 신발도 신지 않았습니다.
큰 그릇을 짊어진 스님들은 맨발로 터벅터벅 걸으며 말없이 음식을 건네 받습니다.
승려들이 사람들에게 그저 받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탁발그릇이 가득 차면 다시 나눠 주기도 합니다.
주고 받음이 동시에 이뤄지는 현장이었습니다.
날이 완전히 밝는데 까지 1시간 정도 지났습니다.
그 사이 탁발은 끝났습니다.
다들 순식간에 스스로 흩어졌습니다.

여행자는 매일 새로운 아침을 맞이합니다.
오늘 맞은 루앙프라방의 아침도 새로운 나의 순간입니다.
그리고 그 아침은 무엇보다도 조용하고 순수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루앙프라방의 탁발 행렬은 잊고 살았던 순수의 날들을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2004년 1월)

이경수는 늘 꿈을 향해 어딘가로 떠날 준비가 된 자유인. 골짝나라 곡성의 산골마을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공부하고 기자가 됐다. 30년 넘게 광주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무작정 떠난 한달간의 인도여행’ ‘사랑해서 떠난다’ ‘新만주아리랑’ 등 몇 권의 여행기를 썼다. 관광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땄으며, 이제는 보다 더 잘 놀기 위해 궁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