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세상이 정지되어 버린 듯하다. 첨단을 걷는 이 시대에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의 일상으로 침투해 들어와서는 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이 코로나바이러스는 사람들과의 대면에서 전염이 된다는데, 살고 싶으면 세상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듯 비웃는 것 같다. 하지만 세상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서로 마주할 때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창궐하는 코로나바이러스라 할지라도 잘 먹고 면역력을 키워서 지혜롭게 이 난관을 극복해내야지 싶다.

배고프고 힘들었던 가난했던 때가 있었다. 움직이면 배 꺼진다고 움직이지 말고 가만가만 걸으라고 하셨던 할머니가 계셨다. 그 때도 세상이 정지된 듯 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텃밭에 감자를 심어 놓으시고 매일 감자밭 고랑의 풀을 뽑으셨다. 하지만 감자는 보이지 않고 어느 날부턴가 감자꽃이 피었는데, 그 때는 감자꽃이 보라꽃인지 하얀꽃인지 그것보다는 “감자는 어딨는거야?” 하며 그것만 궁금해 했었다. 땅 속에서 툭하고 튀어나온 알이 굵은 감자를 캐던 날, 보라꽃 아래에서는 보라감자가 나왔고, 하얀꽃 아래에서는 하얀 감자가 나왔다. 할머니가 그 감자를 쪄주셨을 때 한 입 베어 문 감자의 뜨겁고 포근하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가난은 그렇게 우리를 뜨겁게 하면서 지나갔다.

감자꽃
권태응(1918~1951)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권태응시인의 감자꽃은 할머니를 닮았다. 일제 강점기를 살았던 시인의 응어리진 굴곡의 역사 앞에서 시인이 지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까짓것 살고 싶으면 하라는대로 하면 될 것을, 하지만 시인은 그러지 않았다. 감자꽃을 시로 쓰면서 그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우리 땅에서 태어났으면 우리 이름을 쓰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시로 말했다. 파보나마나 보라꽃 핀 데서는 보라감자가 나오고, 하얀꽃 핀 데서는 하얀감자가 나오는 이 진리를 누군들 막을까. 봄볕이 확연할 때 집집마다 텃밭에서는 감자가 땅 속에서 알알이 자라고, 감자꽃은 피었다. 그 앞에서 우리는 기다렸다. 그래서 할머니가 애지중지 키운 알 굵은 감자를 소나무불에 쪄서 먹으라고 주실 때, 손에 받아든 그 뜨거움을 잊을 수가 없다. 지독하게도 가난했던 배고픔을 이겨내게 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함 같은 그 뜨거운 바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코로나바이러스가 무섭게 파고들면서 우리의 일상을 흔들고 있는 요즈음, 감자꽃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찐감자에 김장김치 한 쪽 올려서 먹는다면 힘들고 지친 시간들을 위로받지 받지 않을까 한다.

정연우는 시인이다. 쌩텍쥐베리의 ‘어린왕자’를 좋아하는 시인이다. 함평에서 태어났으며 석양 무렵 기차가 지나가는 시간이면 그리움이 기차를 따라 달려왔다고, 그래서 기차를 타고 어린왕자가 왔던 소행성 B612을 가보는 것이 꿈이라고 말한다. ‘곡성어르신들의 이야기’ 집필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안교육에도 참여하고 있다. 관광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땄으며, 곡성에서 전원생활을 하는 시인은 충실한 정원사처럼 아름다운 시(詩)의 정원사가 되고 싶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