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나고 봄이 오면 아버지 생각이 먼저 난다. 요즈음처럼 어려운 시기엔 더욱 그렇다. 고기반찬 아니어도 정성껏 차린 밥상을 앞에 두고 아버지를 떠 올린다. 아버지는 홍어를 썰어넣고 미나리 데쳐서 새콤달콤하게 초무침을 해드리면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나른해지는 봄날엔 기운 번쩍나게 식초를 먹어줘야 한다시며 밥상에 초무침이 오르면 까무잡잡하게 그을린 얼굴에서 미소가 번지시던 아버지. 함평에서 가까운 곳에는 나주와 영산포가 있다. 나주는 선산이 있어 자주 가는 곳이고, 영산포는 홍어배가 들어오는 곳이라서 가시는 곳이다. 홍어를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보리가 파아랗게 자라면 영산포로 자전거를 끌고 홍어애를 구하러 가셨다. 홍어초무침도, 보리 넣어서 끓인 홍어애국도 좋아하셨던 아버지시다.

정연우시인의 ‘밥상은 수수하지만’시를 보면 그런 아버지를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이 뜨신 밥상으로 차려진 것이 보인다. 아등바등 살았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교차하여 당신이 좋아하시던 홍어를 저 멀리 서해바다에서 공수해 오고, 굳이 면역력에 좋다는 곡성돼지고기를 뛰어오게 하여 불끈 힘나게 하는 사랑도 보인다.

밥상은 수수하지만 /정연우


밥상이 수수하오!
하루종일 아둥바둥 고된 노고에
입맛 나는 게 하나도 없겠다싶지만
긴 겨울 해풍을 담은 동초에
하늘을 이고 살았던 뿌리깊은 흰 무우와
저 멀리 서해바다에서 헤엄쳐 온 홍어가
그나마 조신하게 밥상에 오르니
면역력에 좋다는 곡성돼지고기 한걸음에 뛰어와
불판에서 죽어주는, 귀염까지 부리는구려!
날 선 바람이 문틈에서 기웃터라도
뜨신 밥에 배불리 먹어주신다면
내겐 그것이 봄이 온 거나 매한가지겠소!

정약전의 저서‘자산어보’에 보면 홍어는 술독이 풀리고 장이 깨끗해지는 효능이 있다고 했다.‘본초강목’에는 홍어를 하어(荷魚) 또는 해음어(海淫魚)로 기록하고 있으며,‘세종실록지리지’에는 홍어를 임금님께 올리는 진상품으로 매우 귀하다고 했다.

예전엔 영산포 나루터에 홍어잡이 배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는데 봄이 되면 홍어 삭는 냄새로 영산포가 진동했다한다. 삭힌 홍어를 먹는 풍습은 고려 말부터라고 하니 600여년전부터 홍어를 먹었다는 애기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 지형상 서해안과 남해안은 특히 왜구들의 침범이 잦았는데, 시도 때도 없이 침범해 오는 왜구들을 피해 육지로 도망 나온 흑산도 주민들이 보름이나 걸려 영산포에 도착해서 보니, 주섬주섬 챙겨서 들고 나온 다른 고기들은 다 썩어서 형체도 없는데 홍어는 푹 삭아서 냄새는 나지만 그대로였다고 한다. 먹을 것이 없었던 그 때 푹 삭은 홍어를 먹는데 코를 찌르는 매운 맛은 있어도 먹을수록 아리아리한 맛이 알싸해서 계속 먹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영산포 홍어의 시작인 셈이다.

전라도 사람이라면 홍어를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을 정도로 아리아리한 맛의 홍어를 좋아한다. 이렇듯 홍어가 밥상이 되었던, 잔칫상이 되었던 오르다보니 홍어배 들어오는 날이면 영산포 나룻터에는 장시들로 문전성시였다. 홍어하면 암놈이 특히 맛이 좋은데 맨날 암놈만 잡히는 것은 아니었으니, 어부들은 좋은 값에 팔리고 싶은 맘이 앞서 홍어배가 나룻터에 닿기 전에 숫놈 홍어 거시기를 떼서 영산포 나루에 던져버리고 장시에게 넘겼다. 홍어 거시기를 뗀다고 될 일이겠냐만은 그 때부터 ‘만만하면 홍어 거시기냐!’는 말이 나왔다고 하니 그 거시기가 그 거시기인가 싶지만 모를 일이고. 그렇게 떼버린 홍어를 집에 가져와서 먹어보면 대번에 알 수가 있다. 암놈 홍어인지 숫놈 홍어인지. 어부들한테 속아서 사 온 뻣뻣한 숫놈 홍어를 버리기는 뭣하고, 해서 회를 쳐서 미나리 넣고 초무침을 하면 그나마 홍어회 초무침이 일품이 된다. 그러나 억울해서인지 화가 나서인지 잘못 사 온 숫놈홍어를 칼질하면서 “홍어든, 사내든 회쳐야 된다”시던 어머니 말씀이 무슨 말이었는지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 같으니 나도 나이를 먹었나보다.

열심히 산다고 사는데도 왜 항상 그 자리인지 모르겠다 하시면서도 새벽부터 장사를 나가셨던 아버지. 그렇게 맨날 일에 치여 사시던 아버지. 하루종일 일을 해도 자식들이 신고 싶다는 운동화 한 켤레 사주는 것이 벌벌 떨린다고 어느 날엔, 소주 한 병 앞에 두고 넋두리처럼 말씀하시는데 그 목소리가 떨리던 것을 기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이 다 신고 다니는 메이커 있는 운동화 ‘안 신을래요.’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겨우 ‘그거 말고 다른 거 사줘도 돼요.’하면서 아버지보다 더 빨리 울었던 딸. 메이커 아닌 운동화 사겠다고 한 발 물러 선 것이 분해서 울었겠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면 먹고 사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끼니는 제 때 챙겨 드셨는지 왜 한 번도 물어보지 못했을까?

아버지가 좋아하는 홍어 초무침으로 밥상을 차리면서, 소주 한 잔 털어 넣고 눈물을 삼키시던 아버지의 등이 이제는 보인다. 어쩌면 눈물 쏙 나게 하는 아리아리한 홍어 초무침을 좋아하셨던 것이 그 매운 눈물을 감추기에 제격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 정약전의 저서‘자산어보’,‘본초강목’,‘세종실록지리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정연우는 시인이다. 쌩텍쥐베리의 ‘어린왕자’를 좋아하는 시인이다. 함평에서 태어났으며 석양 무렵 기차가 지나가는 시간이면 그리움이 기차를 따라 달려왔다고, 그래서 기차를 타고 어린왕자가 왔던 소행성 B612을 가보는 것이 꿈이라고 말한다. ‘곡성어르신들의 이야기’ 집필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안교육에도 참여하고 있다. 관광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땄으며, 곡성에서 전원생활을 하는 시인은 충실한 정원사처럼 아름다운 시(詩)의 정원사가 되고 싶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