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투만두 달발광장, 2001

내전과 정치 불안이 심한 네팔은 총파업으로 인하여 교통이 전국으로 마비될 때 여행자에게는 가장 불편한 곤욕스러움을 느낀다. 수차례의 방문 중 오래 전의 경험이다. 살벌한 군인들의 검문과 경찰의 경호로 카투만두에서 포카라까지 열두 시간 소요로 입성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포카라에서는 한국교민인 목사님의 도움으로 자가용을 빌려 타고 여행한 적도 있었는데 2003년 6월말, 네팔 전국이 완전히 교통이 두절되었을 때 포카라에서 룸비니까지, 요금이 조금은 비싸지만 3명이 택시를 타고 불안한 정국을 탈출하듯 이동하였다. 쫓기는 마음만큼이나 어느 지점에서는 장대비가 쉬지 않고 쏟아지는데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 거친 폭우였다.

네팔 포카라의 밤, 2001

새벽에 출발하여 오전 10시에 허름한 가게에서 겨우 계란과 짜이 한 잔으로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낙석의 위험과 폭포가 있는 산간의 길을 거쳐 푸타와를 경유하는데 엄청난 홍수로 소도시가 물난리를 겪는다, 그러나 다행히 노련한 택시기사 덕분에 사고 없이 나아간다. 남진하는 과정에서 안개가 자욱한 한적한 시골길에 잠시 정차한다. 택시기사가 소변을 보기 위해 쏟아지는 빗속에서 일을 본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속담처럼, 나도 우산을 쓰고 그 택시기사 옆으로 다가가서 비를 맞지 않도록 배려하고 소변을 보는데 그는 잠시 일을 멈추고 비를 맞으면서도 옆으로 옮겨 일을 본다, 순간 왜 나의 배려를 거부할까? 의문이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힌두교인인 그는 손님에 대한 배려도 있지만 카스트 제도에서 베인 오랜 습성으로 자연스럽게 행한 일이었다, 문득 몇 천 년 간 우성과 열성으로 구분 지어 그 제도를 관습화 되다보니 동등한 존재라는 휴머니즘적인 나의 배려도 불구하고 고정된 관념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아직도 스스로 천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제도적 습성을 벗어버리기가 쉽지 않다. 그 날의 경험은 고정관념의 신분 차이로 문득 이국의 여행자가 브라만이 되어버린 것 같아 왠지 씁쓸한 느낌이었다.

네팔 룸비니, 2003

7시간 소요의 장거리 여행으로 룸비니, 대성 석가사에 도착하여 법신스님의 따뜻한 환대를 받는다. 나른한 오후, 한가한 초원과 나무사이의 신작로에 아장 아장 걷는 큰 거위 떼들과 초막 앞에 한가로이 앉아있는 노인의 모습이 참선 중인 것처럼 고요하다,

다람살라의 빗소리

우주의 생명체는 모든 것이 존재가치가 있고 또한 모든 인간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석가모니 탄생지의 풍경은 고요하고 한가해서 명상적인 분위기다. 룸비니 지역의 해찰시간은 어리석은 중생의 삶에 그 무엇인가 마음의 울림을 주는 자비와 평화를 상징하는 성지 같았다. 나무 그늘 아래서 쉬는 노인과 작은 개천에서 헤어진 망태기로 어설프게 고기를 잡으며 이방인에게 몇 마리 잡은 것을 자랑하는 검게 그을린 해맑은 청년들의 웃음은 신분의 구분 없이 갓 태어난 신생아의 미소처럼 시비분별이 없는 시간이다.

석주(石洲) 박종석(朴鍾錫)은 한국화가로 호남대학및 조선대대학원 순수미술학과를 졸업하고 개인전 18회 및 초대전 7회를 통해 활동하며 광주미술상 수상과 서암전통문화대상을 수상 하였다. 또한 30여 년간 세계여행을 통해 세계 문화유산 연구와 현장 사생을 하며, 호남회화500년사를 연구하며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