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두상, 12X32cm. 2017

태국 방콕에서 멀지않은 아유타야 외곽 고속도로, 어느 정류장에 쓸모없이 내던진 짐짝처럼 하차했는데 어두운 시각이다. 허다하게 겪는 당연한 순서이지만 도심 입성이 난감한 처지이다. 1시간정도 궁리하다가 조금은 비싼 차를 흥정해서 짜오프롬 시장 부근에 내린다. 이곳저곳 탐색하다가 겨우 허름한 BJ 게스트하우스 2층에 여장을 푼다. 흡족하지 않지만 그래도 만족해야 하는 철없는 나그네 신세다.

아유타야. 32X24cm. 2017

아유타야는 태국 최고의 역사 유적지로 1350년 우텅 왕이 왕조를 세우고, 1438년에는 타이족의 국가인 쑤코타이를 합병하여 통일국가를 이룩했으나 1767년, 버마군에 의해 멸망한다. 현재도 멸망 당시 처참한 상흔들이 남아 있는데 대부분의 불상들이 목이 잘려나가 있다. 여러 왕조의 권력투쟁도 역사의 굴레에서 보면 승자도 패자도 없는 무상함을 전해주는 것 같다.

아유타야 사원. 32X24cm. 2017

아침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왕궁터 안의 넓은 사원들을 관찰한다.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유적지는 다양하고 규모가 대단하면서 매력적이다. 특히 나무뿌리에 감겨 안치된 불두상이 인상에 남는다. 관광객들이 그 앞에서 인증 샷을 찍느라고 북새통이다. 휴식이 필요한 시간이다. 호수가 잔디에 누워 오수를 즐기면서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일어나 또 걷는다. 왕궁 유적지를 8시간 동안 해찰하며 화첩을 펴고 사생한다. 오는 길에 최고 권력층에 속한 왕족의 행차로 경찰들이 통행을 철저하게 제한한다. 귀한 분들의 나들이에는 민심이 천심이라는 서민들도 숨죽여 있어야 한다. 이방인도 지켜야 도리이다. 오후 4시에 강변으로 가서 수상 보트를 타고 아유타야를 감싸고 있는 강줄기를 한 바퀴 순례한다. 화려하고 멋진 강변의 여러 사원들을 관람 후 오후 6시에 일과를 마감한다. 다리도 아프고 배가 고파 더 이상 걸을 수 없다.

보트, 12X32cm. 2017

거대한 아유타야 유적 탐방은 느낌으로 음미했으나 태국 최대 유적지라는 것과 버마군에 의해 유린당한 불두상이 잘린 유적을 보면서 ‘우주 만물은 항상 돌고 변해서 한 모양으로 머물지 않음’을 표상으로 삼고 또한 ‘인류역사는 수레바퀴처럼 흥망성쇠를 거듭 반복하면서 이어지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다음날 방콕에 도착해 카오산 거리에 숙소를 정하고 황금 사원을 2번이나 방문해서 5년 전부터 인연이 된 사원에 거주하는 친구 화가인 필립퐁을 만나 사원 내부를 자세히 관람하고 스님들 몇 분들을 현장 사생한다. 5년 전에 가서 그림 20여점을 남기고 왔는데 골든 템플과 유명한 고승을 소개하는 책자에 나의 그림이 6점이나 실렸다면서 자료로 몇 권 선물해 준다. 뜻밖의 인연이자 이제는 필연이 되어 버린 느낌이다. 나는 필립퐁에게 차고 있는 시계를 선물하며 오랜 만남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합장하고 포옹하며 다음을 기약해 본다. 세계 3대 명소 거리 가운데 하나인 카오산 거리는 여러 번 방문했으나 수많은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변함없는 생동하는 거리로 야밤 3시까지 취중천국으로 숙소의 선택을 잘해야 꿈나라가 편안하다.

세상은 각양각색의 연극무대와 같아 어떤 배역을 맡느냐에 따라 역할이 달라질 것이고, 새로운 제목의 가설(假設) 무대는 한정 없이 이어지며 희로애락의 각본이 쓰여 질 것이라 상상해본다.

석주(石洲) 박종석(朴鍾錫)은 한국화가로 호남대학및 조선대대학원 순수미술학과를 졸업하고 개인전 18회 및 초대전 7회를 통해 활동하며 광주미술상 수상과 서암전통문화대상을 수상 하였다. 또한 30여 년간 세계여행을 통해 세계 문화유산 연구와 현장 사생을 하며, 호남회화500년사를 연구하며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다.